중국 부동산 시장은 1998년을 기준으로 나뉘어 볼 수 있으며 1978년부터 1998년까지는 중국 부동산 시장의 태 옹기에 해당되며 계획경제를 벗어나 시장경제로 개혁을 추진할 때입니다. 당시에 정부의 계획에 따라 시장이 성장했고 이후 1998년부터는 주욱 부동산 시장의 폭풍 성장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중국 정부는 기존 주택 분배 제도를 전면 수정하였고 부동산을 시장에서 매매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였습니다. 1998년에 부동산을 구매한 중국인들이 부동산 폭등으로 많은 이득을 보았습니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주택의 수요는 1인 GDP와 상관이 있다고 하며 1인당 GDP가 300달러 수준에서 주택수요증가하여 1,300달러가 넘으면 빠른 성장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중국에서는 2004년 1인당 GDP가 1,400달러를 넘으며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고 이후에 매년 10% 이상씩 폭등하였습니다. 중국 부동산 폭등은 중극 금융제도와 관련이 있으며 지난 20년간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처럼 중국의 엄청난 수출을 통홰 외화를 벌어 정국 정부의 외환정책에 따라 위안화로 바뀌어 시중에 풀었습니다. 저금리 기조에 의해 시중에 푼돈이 부동산으로 몰렸고 부동산 폭등을 이끌었던 것입니다.
중국 부동산 폭등 시기 한대에 팡지에, 팡메이 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팡지에는 부동산 누님 팡 메이는 부동산 여동생이라는 뜻입니다. 팡지에는 여러 채의 부동산을 가진 나이 많은 여성을 말하며 2012년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그녀가 2개의 신분증을 이용해 베이징에 20채의 집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 가격은 모두 10억 위안 (한화 1,800억)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어 인터넷에는 팡 메이에 대한 기사도 올라왔습니다. 정저우시에 주링허우 여자아이가 11채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의 아버지는 부동산 관련 공무원으로 이미 300여 채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들어 났습니다.
팡지에, 팡메이에 이어 팡누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팡누는 평균 월급이 3,000위안이 안 되는 일반 노동자들이 1백만 위안이 넘는 주택을 사기 위해 급여의 대부분을 부동산 대출로 갚는데 쓰는 것으로 일명 하우스 푸어를 일컫습니다. 부동산의 투기ㅘ 가격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지만 중국의 경우 부동산 가격이 소득 수준에 비해서 너무 차이가 많이 납니다.
원저우에서는 부동산 투기단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원저우의 상인은 어렸을때부터 장사를 배웠고 중국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원주우 투기단은 상하이, 항정, 쒀, 샤먼, 베이징, 닝보, 진화 등지까지 진출하여 부동산을 매입하였습니다. 그들은 조직적으로 활동했고 보통 100명 이상이 모여 좋은 단지를 통째로 구매하고 세를 놓지 않고 가격이 올를 때까지 기다려 팔아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 2001년에는 부동산 투기단 157명이 상하이에서 3일 만에 100채를 구입하였고 투자한 자금만 1,000억 위안이 넘는 다고 합니다. 이후 참지 못한 중국 정부에서는 부동산 구매에 해단 정책을 내놓아 투기단의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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